시작이 그즈음이었나. / 스파트필름
할머니가 살던 집엔 늘 꽃과 식물이 많았다.
그땐 할머니가 키우던 것들이었고 내겐 늘 집에 있던 것들이었던 것들이었다.
나가보면 예쁜 식물들도 많은데 왜 안 예쁘고
흔하디 흔한 것들만 있을까, 이름도 안 궁금했던 화분들이었다.
어떤 건 잘 자라고 몇번이나 분갈이를 했고
고모들에게도 줬고, 고모들은 집에 오면 잘 자라고 있다는 둥, 이사한 집엔 잘 안 자라난다는 둥 내가 봤을 땐 늘 똑같은데 흘리기 쉬운 말들을 주고 받았다.
마당엔 늘 꽃과 할머니가 심어놓은 상추 쪽파들이 자라났고
여전히 내겐 늘 있는 것들이었다.
별 생각없이 작은 화분을 샀다.
작업실에 두면 예쁠 것 같아서가 이유였다.
잘 자라라 뭐 그런 마음도 없이 그냥 뒀더니 잘 자랐다
마음 쓰임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자라나는 건 줄 알았다.
여전히 내겐 그냥 있던 것들이었다.
할머니가 잘 걷지를 못해 시간이 가장 여유로웠던 내가 도맡아서 병원을 오고 다녔다. 맨날 가던 길을 가다가 꽃이 피었던 것 같던데라면서 방향을 틀어서 잠깐 구경해요. 했다.
“우와”
할머니 입에선 계속 감탄사가 나왔고, 백미러 너머로 보이는 할머니 얼굴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잊어 가던 것과 무심했던 것.
할머니와 나 사이에 있던 것들이었다.
할머니는 집에 와선 하루종일 꽃 본 이야기를 자랑했다.
사촌 언니 오빠가 집에 왔을 때도 계속 이야기했다.
“우리가 무심했지?”
“그렇네 저렇게 좋아하시네.”
그냥 있던 것들이 이젠 할머니가 좋아하던 것들로 바꼈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고 차를 탈 일도 없이 병원에만 있게 됐다. 사진첩엔 할머니 보여주겠다며 찍어 놓은 나무, 꽃 투성이었다.
이제 제대로 볼 수 없는 것들은 흥미를 잃어가게도 만드는 건가보다. 그때만큼 감흥은 이제 내비치지를 않는다.
중환자실을 나와서 다시 요양병원으로 간 할머니에게
“할머니 자꾸 휠체어 타는 연습을 해야지 이제 꽃 필 땐데 꽃도 보고 바람도 쐬지”
매일 잔소리를 했다.
“그래야지” 라는 할머니 대답 뒤엔 이젠 못 봐라는 말이 자꾸만 묻어 있는 기분이었다.
꽃 필 날만, 같이 바람 쐴 날만 기다렸는데, 할머니는 꽃봉오리가 돋기 시작하자마자 바쁘게 떠났다.
정신없이 울고 장례를 치르고 나서도 실감이 안났다.
장례가 끝나고 내가 엄마아빠한테 했던 말은 식물 사러 가자였다.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허한데, 뭐라도 들여놔야겠는 기분이었다.
농장으로 가서 하나씩 고르기 시작했다.
그때 아빠가 예쁘다고 가져온 건 흔하게 집에 있던 스파트필름이었다.
흔하디 흔하고 늘 옆에 있던 게 새삼스럽다.
할머니가 아끼던 화분에도 심었다가 다시 분갈이를 하면서 팟을 옮겨주면서 그날 이후부터 늘 옆에서 함께 하고 있다.
느닷없이 식물을 키우겠다고 마음을 먹고, 왜 저렇게 안 예쁜 걸 키워라던 식물을 누구보다 열심히 키우고 있다.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하는 걸 보더니 엄마는 할머니 닮았네 라고 말을 한다.
“보고 자랐지.”
내가 가진 세상에 대부분은 할머니가 준 것들이었다.
1년이 지났어도 할머니가 옆에 없다는 건 믿어지지 않고, 나는 여전히 할머니가 준 세상에서 살고 있다.